사도전승에 관한 글에 대한 답변


최근 성공회 게시판에 들어 갔다가 놀랍게도 제가 쓴 글들이 많이 올려져 있는것을 보고 놀라와 했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쓴글이지만 그당시  저는 성공회와 가톨릭의 하나됨을 위해서 가톨릭의 '전통'을 고려해서 성공회의 사도 전승에 대한 답변을 역사적인 사실을 가지고 간략하게 만들었던걸로 기억이 납니다.

한국 성공회 게시판에 인용된 저의 글에 대한 반박 글이 올라와 있으므로 이에 대한 답변을 저의 블로그를 통해 말하고자 합니다.

첫째, '유일하게 파문된 주교'는 문맥상 '대주교'를 의미합니다. 글의 흐름을 보았을때 분명 '대주교'임을 이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사도전승은 캔터베리 대주교좌에 대한 이야기 이니깐요.

둘째, Elizabeth I에 대한 파문이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Pope Pius V의 Bull이 캔터베리의 사도전승에 까지 영향을 주는 것인지는 현재의 신학자들 사이에도 논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가톨릭에 의해 캔터베리 대주교좌가 Excommunication 된듯한' 늬앙스의 표현은 '저의 글을 반박한 분이' 사도전승에 대해 신학적 접근 방식으로 전통을 지킬 의지가 있는지 조금 의심스럽게 들리는 부분입니다.

"It is evident that Pope Pius V. excommunicated Queen Elizabeth not because the Church of England was erroneous."  
History of the Church of England (Volume 4); From the Abolition of the Roman Jurisdiction, p. 310 

셋째, 의무는 아닐 지언정 전통적으로 대주교는 전임 대주교의 참여하에 착좌 되어 왔습니다. 한국의 성공회 전통도 이에 근거 합니다. 따라서 전임 대주교의 정통성은 '상징적 의미'이상의 중요성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사소한 이슈들이 너무 미시적이며, 시간을 헛되이 소비하는것 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신앙과 연결 될 수도 있는 문제이기도 하죠. 

결론적으로 한국 성공회 게시판에 반박 글을 올려주신 사제라고 추정되시는 분께 감사 드립니다. 덕분에 잠시 감추어 두었던 저의 열정을 다시 꺼내 보게 되었으니깐요.
Ryan

by 에모리 | 2011/11/02 01:18 | Anglican | 트랙백(2) | 덧글(0)

가톨릭의 성공회에 대한 중요한 발표 및 개인적인 논평

 

미국 시간으로 늦은 시간에 Vatican CDF(The Congregation of the Doctrine of the Faith)에서 교황님을 대신해서 성공회 대한 중요한 내용을 공표했습니다.

 

내용은 앞으로 성공회에서 로마가톨릭으로 전향(?) 오는 Anglican들은 그들의 신앙과 예전을 바꿀 필요 없이 그대로 자신들이 해왔던 성공회의 정체성을 지킬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제껏 바티칸의 신앙이 껄끄러워서 전향(?)하지 못했던 보수적인 Anglican들을 위해서 무리해서(?)’ 자신의 신앙 정체성을 바꿀 필요 없이 로마가톨릭안에서 신앙 생활 있도록 허락하겠다는 뜻입니다.

이를 테면 어떤 성공회 교회(Parish) 가톨릭 교회로 편입된 다하더라도 이전부터 지켜왔던 성공회의 미사나 그것의 문화에 대해서 간섭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 성공회가 가지고 있는 Protestant 성향에대해서 공감하고 이또한 수용할 있으며, 나아가 결혼한 사제또한 로마 가톨릭 사제로 편입될 있음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CDF 수장인 추기경William Joseph Levada 의해서 직접 언급된 사실입니다. 이에대해서 The Church of England에서는 뚜렷한 대응을 자제한체 (사실 발표 몇시간전에 통보 받아서 대응 준비가 안된 상태입니다.) 어느정도 예상했다는 분위기 입니다.

 


이어지는 내용

by 에모리 | 2009/10/21 13:05 | Anglican | 트랙백 | 덧글(4)

[수정] 임종호, 주낙현 신부님께 드린 글...

임종호 신부님 사이트에 댓글로 다신 영문 명칭에 관한 글을 읽다가 문득 제가 요즘 생각하고 있는 한국 성공회의 영문 명칭(The Anglican Church of Korea)에 대한 이슈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우선 한국 성공회 교인도 아닌 제가 이런의문을 가지게 된것이 약간 주제 넘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공회의 영문 표기인 The Anglican Church of Korea를 계속 고집하면서 왜 한국어 말음 표기인'Seonggonghoe'는 멀리하거나 잘쓰지 않는지모르겠습니다.(확인결과http://www.anglicancommunion.org/에서 조차 공식 명칭은 The Anglican Church of Korea더군요.)

 

일본의 경우 위에서 언급한데로 'The Nippon Sei Ko Kai(Japanese Holy Catholic Church)'입니다. 그리고 또다른 영문표기로 'The Anglican Church in Japan'입니다. 아시다시피
미국 Episcopal Church에서는 더이상 The Nippon Sei Ko Ka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습니다. 오히려일본만의 영문식 표기라며 신기해하면서 자신들또한 알고 있는걸 자랑하곤합니다.(제 주변의 사제분들의 공통된 모습입니다...)하지만 왜 한국은 굳이 The Anglican Church of Korea를 고집하는걸까요?

주낙현 신부님의 Article in 'The oxford guide to the book of common prayer'에서 한국 성공회를 Seonggonghoe로 표기하셨고, 한국 성공회에서도 '가끔' 영문 표기로 'Seonggonghoe'라는 표기를 함께 쓰시기는 했지만 공식적인명칭은 여전히 한국 성공회는 The Anglican Church of Korea 이라고 보여집니다. 문제 제기는 다음과같습니다. 통상 'The Anglican Church of 나라이름'은 영국에서 독립한 과거 식민지 나라들의 이름에서 자주보여지곤합니다. 예를 들면 Canada, Australia, Tanzania, and Kenya에서 볼수 있습니다. 물론 한국성공회는 오랜 시간동안 The Church of England 소속이었고 영국 국교회의 Mission Church였기때문에 이러한연관성속에서 'The Anglican Church of Korea'를 이해해 볼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전혀 세계사 지식이없는 미국인이나 영국인이 보았을때 한국 성공회의 영문 표기는 오해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 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과거 영국 식민지였던 Hong Kong 성공회의 경우 Anglican Communion에서 공식명칭으로 'Hong Kong Sheng Kung Hui'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대놓고' 성공회라고 쓰고 있습니다.편리하게 독음을 따로 떼어서 뜻이 서로 다르게 존재함을 나타내기위해서 'Sheng Kung Hui'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에비하면 한국의 표기인 'Seonggonghoe' 는 Western문화에서 보았을때 조금 익숙하지 않습니다. 다만 The Church of Korea보다는 훨씬 독립적이고 의미 있는건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성공회에대해서 앞에'Episcopal' 붙이자고 하는것도 할 수 없는 일이겠죠. 아시다시피 미국 Episcopal Church의 역사에서 Episcopal 이라는 이름을 택한 이유중에 하나가 The Church of England가 그당시 독립한 미국 성공회의 Role model 이 아니었기 때문에 [물론 Samuel Seabury의 Bishop서품과의 연관성도 있습니다.]  'Anglican' 이름 대신 Episcopal을 넣었습니다. So, 어떤면에서 Episcopal이라는 이름은 은연중 The Church of England의 전통과 노선에서 좀더 구별되는 이름이라는 늬앙스가 있어서한국 성공회와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The Scottish Episcopal Church의 경우는 좀더 역사적인 이해가따르는 부분이긴 합니다.)


어쨌거나 처음 'The Anglican Church of Korea'를 생각해내신 분의 순수한 의도도 고려해야할 부분이긴 하지만 좀더 21세기 한국성공회에 맞게 독립적인 이름을 쓸 필요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른 이슈로 저는 한국 성공회의 대표주교의 이름이 'Primate'인 것도 그다지 맘에 들지 않습니다. 좀더 우리나라 정서에 맞는 멋진 이름도 많을터인데...


by 에모리 | 2009/07/13 07:40 | Anglican | 트랙백 | 덧글(0)

왜 Scottish Episcopal Church는 Anglican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는가?

이글은 대한성공회에 답변으로 올린 글입니다.

‘Episcopal’이라는 명칭은 Greek Episcopos에서 왔습니다. 성서적인 의미에서 볼때 ‘Oversee’ 의미로써 주교가 교회를 governing하는 교회를 일컫습니다.

질문자께서 질문하신 Scottish Episcopal Church Anglican Church라는 이름을 쓰지 않는가를 대답하기 위해서는 ‘Anglican’이라는 명칭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Anglican’ 어원은  ‘Ecclesia Anglicana’에서 왔으며 Ecclesia Anglicana 의미는 중세에 널리 쓰였던 영국 가톨릭 교회 의미하는 또다른 이름이었습니다. 좀더 쉽게 말한자면 교황의 교도권안에 있었던 영국교회의 별칭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Church of England(영국국교회) 로마로부터 독립하면서 명칭또한 함께 가져와 쓰게 됩니다. 이유는 Ecclesia Anglicana 의미가 지역적 의미를 띄고 있는 전통적인 영국 교회의 명칭이었기 때문에 영국을 대표하는 영국국교회가 명칭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Scottish Episcopal Church Ecclesia Anglicana에서 비롯된 Anglican이란 명칭을 쓰지 않는걸까요? 이유는 중세시대 Scotland 지역 교회 명칭은 Ecclesia Scotticana 였으며 만약 Anglicana라는 명칭을 붙인다면 다른 지역를 의미하는것이므로 받아 들일 없었습니다. 질문을 발전시켜서 그렇다면 Anglican처럼 Scotticana 쓰지 않고 Scottish Episcopal Church이라고 했을까요? 이부분에 있어서는 종교 개혁당시 Scotland안에 있었던 성공회와 장로교사이에 분쟁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로교는 아시다시피 ‘No king, No bishop’ 원칙아래 왕권을 부정하고 왕권과 밀착되어 있었던 Bishop에의한 통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개혁당시 과도기에 주교를 임명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금의 영국왕 처럼 이름만 왕일뿐 교구에 대한 힘이 없는 명예직이었습니다. 따라서 Scotland 성공회는 이러한 장로교회의 ‘No bishop’ 구별되는 의미인 ‘Episcopal’ 이라는 쓰게 되었다고 추측됩니다.

 

 

by 에모리 | 2009/07/03 09:25 | Anglican | 트랙백 | 덧글(0)

[Series 1] 성공회에 사도전승이 있는가?

최근에 성공회 서울 주교좌 게시판에서 '성공회의 사도전승'에 대해 논한바가 있습니다. 그곳에 글을 올렸던 가톨릭 신자분과의 대화속에서 한국 가톨릭이나 여타의 기독교 교단들이 성공회의 사도전승에 대해서 많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한국 성공회는 이를 바로 잡지 않고 방치해 두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시리즈로 글을 하나 하나 만들어 갈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미국 성공회(Episcopal Church)에서 서품과정에 있지만 좀더 객관적인 관점에서 즉, 성공회와 가톨릭의 사이에서 바라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1. 성공회는 가톨릭에 의해서 파문 당했는가?- 아닙니다.

대개 가톨릭 신자분들은 성공회를 가장 가톨릭과 가까이에 있는 형제로 여기면서도 성공회에 대해서 잘 못 알고 있는 부분이 큽니다. 큰 오해는 루터의 파문을 성공회와 연관 시켜 생각하려는 시도들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나온 질문들이 '성공회에는 파문 당한 주교'가 있나요?'입니다. 이 질문이 의미하는 바는 사도 전승에 흠결이 있는 교회인가 아닌가를 묻는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성공회에서 아니 당시 영국 국교회(Church of England)의 사도전승에 있어서 '파문'은 사도전승과 큰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헨리 8세의 파문 이후 유일한 파문은 'Thomas Cranmer'가 유일합니다. 그는 헨리 8세에 의해서 임명된Archbishop of Canterbury 였습니다. 하지만 1553년 교황에 의해서 파문당한후 1556년에 화형됩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Thomas Cranmer가 파문 당한체로 다음 켄터베리 대주교의 주교 서품에 관여 했는가 입니다. 만약 파문당한 대주교가 후임 주교 서품에 관여 했다면 그것은 후대 주교서품에 있어서 큰 '하자'에 해당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Thomas Cranmer는 화형당하여 다음 대주교 서품에 관여 할수 없게 되고 오히려 가톨릭에서 켄터베리 주교자의 '결함'을 치유시켜주게 됩니다. 바로 로마에서 임명한 Reginald Cardinal Pole 켄터베리 대주교가 되면서 Thomas Cranmer의 파문의 효력은 다음 대주교로 이어지지 않게됩니다. Reginald Cardinal Pole 는 추기경으로써 후임 교황 선출에 있어서 가장 유력한 분이셨지만 투표에서 아깝게 역전패 당하셨죠. 바로 그 당시 명망 높은 추기경들중에 한명이 켄터베리 대주교좌에 착좌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켄터베리라인은 Thomas Cranmer(영국국교회 주교:파문) -> Reginald Cardinal Pole(가톨릭 주교:파문치유) -> Matthew Parker(영국국교회 주교)로 서품라인이 이어 지게됩니다.

2. 후임자 Matthew Parker에 대한 논쟁: 종교개혁기의 첫번째 켄터베리 대주교로써 Parker의 서품은 인정 되는가?

Pole 추기경이 Queen Mary(다시 국교회를 가톨릭으로 돌리면서 약 400명의 종교개혁자들을 죽인 여왕)이 죽던 날 우연히도 함께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때 Queen Elizabeth가 Parker를 새로운 켄터베리 대주교로 지명을 하게 됩니다. 이 당시 영국에서는 가톨릭계열(Mary여왕)이나 영국국교회 계열(Henry 8세 계열)할것 없이 왕이나 여왕에 의해서 일단 지명 받게 되어 있었던걸로 보입니다. Reginald Pole 추기경의 일대기를 다룬 책 "Reginald Pole: Prince and Prophet (by Thomas Mayer, Cambridge University, 2007), pg.214에 따르면 Queen Mary(가톨릭 계열)에 의해서 10명 이상의 주교들이 지명되는 부분이 나옵니다. 이때 Pole추기경이 이분들이 가진 잘못들에 대한 사면장을 로마에 보내게 됩니다. 즉, 그 당시 영국의 주교는 가톨릭이든 성공회든 일단 왕권의 개입이 어느정도 이루어 짐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엘리자베스 1세(영국국교회 계열)의 Matthew Parker에 대한 지명(Pole 추기경의 후임)은 그리 놀랄만하거나 주교 서품에 있어서 결격 사유가 될수 없습니다.







다만 Matthew Parker 대주교에 대한 서품 논쟁은 좀더 다른 관점에서 이루어 지게됩니다. 첫번째는 그 유명한 Nag's Head Fable 이슈입니다. 이 설화(?) 같은 혹은 Gossip같은 이야기에 따르면 Matthew Parker가 Nag's Head tavern에서 성경을 머리에 댄체 주교 서품을 받았다는 주장으로써, 처음 영국의 예수회 소속인 Christopher Holywood 신부에 의해서 주장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가톨릭과 성공회쪽 양쪽에서 이 주장은 신뢰성이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주교서품 당시에 대한 기록이(4명의 주교들의 참여에 의해 서품받은 기록) 켄터베리에 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공식적인 가톨릭의 신학사전을 제공하는 사이트
(http://www.newadvent.org/cathen/)에따르면 그 당시 Pole추기경과 Mary여왕이 동시에 죽은 상황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서 Matthew Parker에게 주교서품을 내려줄 영국내의 가톨릭/영국국교회 주교의 숫자가 부족한 상황에 봉착하게 되죠. 따라서 추측에 근거해서 머리에 성경을 대고 서품을 주었다는 루머가 돌게되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영국에 남아 있던 William Barlow, John Scory, Miles Coverdale, and John Hodgkins 주교들에 의해서 Matthew Parker는 켄터베리 대주교좌에 착좌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루머 보다 정말 중요한 논쟁은 다음 시리즈에서 다룰 생각입니다. 가톨릭과 성공회가 갈라지게된 가장 큰 논점이죠.

by 에모리 | 2009/06/24 09:23 | Anglican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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